기사상세페이지

[우리 고장 자연 탐방 2] 청도의 노거수(老巨樹), 천연기념물 301호, 402호 ‘은행나무’를 찾아서

기사입력 2021.03.31 10:12

SNS 공유하기

fa tw gp
  • ba
  • ka ks url
    image02.png
    천연기념물 301호(이서면 대전리 은행나무)

     

    image03.png
    천연기념물 402호(적천사 은행나무)

     

    권규학(숲해설가)

    봄바람 살랑이는 3월 , 파릇파릇 새싹이 움터 오르는 청도천변에 상춘(賞春)의 행렬이 곱다.

     

    봄이라고 하기엔 쌀쌀한 겨울 끝자락, 가볍지 않은 옷차림으로 산책을 나온 상춘객(賞春客)들, 청도천은 오래도록 지속된 코로나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찌든 몸과 마음을 씻어주기에 충분했다.

    맑은 물에 노니는 철새들의 한가로운 모습, 저들에게도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의 위기가 있었을까?

     

    치유불능의 조류 인플루엔자가 유행하기도 했지만 지금의 그들에게선 그런 어두운 그림자는 찾아볼 수가 없었고, 철새들의 여유로운 모습에서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내친 발걸음을 이어 청도지역의 노거수(老巨樹)를 볼 목적으로 청도읍 원리 소재 천연기념물 402호인 적천사(磧川寺) 은행나무와 천연기념물 301호인 이서면 대전리의 은행나무를 찾아 나섰다.

    부푼 기대감으로 찾아간 적천사(磧川寺)!

     

    작은 마을을 통과하여 2Km 정도의 좁은 오름길을 올라서야 겨우 사찰 경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초입의 화엄정사란 작은 간판을 지나자 작은 계곡을 끼고 전원주택과 감나무 밭 사이로 컨테이너 농막이 간간이 눈에 띄었고, 군데군데 산을 파헤친 개발의 흔적이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작은 대숲과 조릿대 사이, 위익 위이익 귀신바람을 불어내는 길섶…, 황토산방과 소담스러운 카페가 로망으로 동경했던 전원(田園)의 환각에 빠져들게 했다. 급경사로 이어진 비좁은 진입로 좌우로 굵직굵직한 자연석과 대형 소나무가 시립한 그 끝자락으로 웅장한 은행나무의 모습이 보였다.

     

    아직은 봄의 초입인지라 여름의 진초록 잎이나 가을의 샛노란 단풍이 없을 뿐이지 V자 형의 소나무 사이, 두 그루의 은행나무 노거수(老巨樹)가 천년고찰(千年古刹)의 위엄을 돋보이게 했다.

    계곡 아래 돌 틈 사이로 촐랑이는 물소리…, 바람이 불 때마다 먼 듯 가깝게 들리는 딸랑이는 풍경(風磬) 소리가 청량감을 더한다. 다만 천년고찰이라기에 상당한 기대감을 가졌었는데 사찰을 한 바퀴 둘러볼 때까지 마치 무인 사찰이기라도 하듯 단 한 사람의 인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문득 ‘왜 이렇게 낡았을까?’ 하는 실망감마저 스친다. 하지만 밖에서의 황량한 느낌과는 달리 사찰 안의 풍경은 마치 두꺼비가 양팔로 품어 안은 듯 아담하고 포근했다.

    풍경에 취해 부지런히 건물 이곳저곳과 사찰 내의 식생들을 구경하고 스마트폰에 담았다.

     

    냉이 꽃다지 꽃마리 달래 쑥 개불알풀(봄까치꽃) 배암차조기(곰보배추) 등 초본(草本) 식물들이 촉촉이 물기를 머금어 봄을 맞이하고 있었고, 소나무와 배롱나무, 벚나무 가문비나무 목련 주목 등 다양한 목본(木本)들이 사찰의 수호신인 양 정겨운 느낌으로 다가섰다.

     

    그 중 가장 큰 감동은 역시 천연기념물 402호로 지정된 은행나무 노거수(老巨樹)였다.

    적천사(磧川寺)의 은행나무는 고려 명종 5년인 1175년 경 보조국사가 심었다고 전해지며, 두 그루 중 앞의 키가 큰 나무가 천연기념물 제402호로 지정되었으며 높이 25~28m, 가슴높이 둘레 11m, 수령은 약 800여 년 정도로 추정되며, 동공이 없고 수형이 아름다우며 수세가 왕성하다.

     

    언젠가 숲 동무가 ‘아직까지도 적천사(磧川寺)에 가 보지 않았는가, 청도 사람 맞느냐?’며, ‘적천사(磧川寺) 은행나무를 만나지 않고서는 가을을 맞이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제는 가을을 만날 수 있을 것도 같다. 뭔가에 쫓기듯이 후딱-이었지만, 봄에 이렇게 봤으니 올가을에도 다시 볼 수 있을 테니까.

     

    바쁘게 발걸음을 돌렸다. 천연기념물 제301호 이서면 대전리의 은행나무를 만나기 위해….

    청도읍 원리에서 차를 돌려 새마을로-청려로-이서로를 경유 도착한 대전리…, 마을 한 가운데에서 정자목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은행나무는 높이가 29m 둘레가 8.5m에 이르는 수나무이다. 

     

    수령 약 400년으로 추정되는 이 은행나무는 1300여년 전 이곳을 지나던 한 도사가 이곳에 있던 우물의 물을 마시려다가 장삼 속의 은행 씨앗이 떨어져 우물 안에서 이 나무가 자라났다고도 하며, 다른 전설에 의하면 이 마을을 지나가던 어느 여인이 물을 마시려다가 주머니에서 떨어진 은행 알에서 싹이 돋아났다고도…, 또한 신라 말 경 행정구역의 변경에 따른 경계목으로 이 나무를 심었다고도 전해진다. 

     

    마을 사람들은 은행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다음해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점쳤는데 이 나무가 한꺼번에 나뭇잎을 떨구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종(種)의 기원(起源)’이란 책을 쓴 영국의 생물학자 다아윈(Darwin, Charles Robert, 1809~1882)은 은행나무를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하였다. 2억5천만 년 전에 만들어진 고생대의 지층에서 화석으로 발견되는 나무이면서 지금까지도 살아남아서 흔히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리기도 하는 은행나무는 같은 과에 여러 종류의 비슷한 종(種)이 있는 다른 식물(나무)과는 달리 ‘은행나무과’에 속하는 나무 중에는 ‘은행나무’, 단 한 그루뿐이다. 사람으로 따지면 친지나 친척 등, 가까운 가족이 없는 외로운 나무이며, 지구상 수많은 나무 중 가장 오래된 나무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은행나무’이기도 하다.

     

    ‘은행을 턴다’, ‘가장 비싼 나무’라는 등, 은유적인 표현으로 흔히 유머나 개그의 소재로 활용되는 등 인간과도 매우 친숙한 ‘은행나무’는 ‘암수 따로’이며 바람에 의해 수분(수정)이 이루어지는데 흔히들 겨울에 잎이 떨어지는 낙엽수인 이 나무를 활엽수로 착각하지만 사실은 완벽한 침엽수의 조건을 갖춘 나무로서 넓적한 형태의 잎은 뾰족한 잎(침엽)이 세월이 흐르면서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활엽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은행나무는 병해충이 별로 없고, 대기오염에도 강할 뿐만 아니라 열매는 식용이 가능하여 기침과 천식 등에 약용하며, 잎에 있는 ‘징코민’ 성분은 혈액순환을 돕기 때문에 성인병 치료제로 상용되고 있으며, 가을에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아름다워 가로수로 많이 활용된다.

     

    ‘은행(銀杏)’은 ‘은빛 살구’라는 뜻으로 흔히 열매로 여겨지는 은행나무 씨가 살구와 비슷하고 표면이 은빛의 흰 가루로 덮여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은행나무는 30년 가까이 자라야 씨를 맺는데, ‘손자 대에 이르러서야 종자를 얻을 수 있는 나무’라고 해서 ‘공손수(公孫樹)’로, 은행나무 잎이 오리발(鴨脚)과 닮았다고 해서 ‘압각수(鴨脚樹)’로도 불리며, 은행 알은 ‘백과(白果)’, ‘압각자(鴨脚子)’라고 하며, 은행나무 목재는 ‘행자목(杏子木)’이라고 한다. 은행나무는 자동차 배기가스를 흡수 정화하는 능력이 우수하고, 나무의 껍질이 두껍고 코르크질이 많아 웬만한 화재에도 불이 옮겨 붙지 않는다.

     

    더구나 열매에는 은행산이라는 독성분이 있는데 바로 이 독(毒)성분에는 고약한 냄새가 있어 해충이나 뱀, 멧돼지와 같은 큰 동물도 근접하길 꺼린다.

     

    비록 인간에게는 열매 냄새가 악취로 다가오겠지만 알고 보면 인체 무해한 천연 해충제가 바로 은행나무 열매이기에 예로부터 집주변이나 사찰, 누각 등지에는 꼭 은행나무를 심었다.

    가을이 오면 온몸에 샛노란 물감을 칠한 채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정녕 억울하다. 가을이 되면 욕이라는 욕은 다 얻어먹어 혈색마저 노랗게 변한다.

    ‘은행 열매’가 몸에 좋음을 알면서도 아스팔트길에 뒹구는 은행 열매는 거의 지뢰 취급을 받아 아무도 밟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다.

     

    긴 겨울 동안 저리도 앙상한 모습으로 살아온 걸 보면…, 어쩌면 은행나무는 우리네 인생을 닮았다.

     

    우리도 언젠가는 은행나무처럼 샛노란 은행잎을 털어낸 채 외롭게 저물어 갈 터, 사랑하고만 살아도 짧은 세월인데 순간을 참지 못해 지지고 볶으며 살아 온 세월이 못내 처량하기만 하다.

    정녕 그렇다. 천년을 살면 은행나무처럼 살까, 만년을 살면 그런 욕심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서로 보듬으며 아끼고 베풀어도 모자란 인생인데 어찌 시기질투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랴.

     

    사랑을 뿌리에 심은 은행나무는 나라에 변고가 일어나면 몸부림치며 울었는데, 인간으로 태어났으면서도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함에 통탄을 금할 수가 없다.

     

    ‘화석나무’란 이름에 걸맞게 우리나라에서 24개소 26주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관리/보호되고 있는데, 그 중 청도지역인 적천사와 대전리 2개소에 세 그루가 있다는 건 청도인의 자랑거리인 바, 이의 관리와 보호를 위해 관련 부서의 책임 있는 손길이 있기를 바란다.

    backward top home